Bari tango festival 바리 탱고 페스티발
"제 방 헤어 드라이가 고장이에요. 언니들 방 드라이기 좀 써도 돼요?"
나는 이렇게 L과 S를 처음 만났다. 엄밀히 말하면 '처음 만났다'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우린 이미 얼굴은 알고 있는 사이였으니까. 그들은 포항이라는 다른 도시에 살고 있고, 나는 서울에 살고 있으니 밀롱가에서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벤트 때 잠시 얼굴을 봤고 정식으로 인사도 한번 했었다. '나는 그분들 얼굴 아는데 그분들이 나를 아는지는 몰라.' 우리는 이 정도 사이였다. 얼굴을 알고 있으니 만나면 인사를 할 수도 있지만, 인사를 안 해도 그러려니 하는 정도의 관계...
긴 여행을 기획하면서, 나와 남편은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바리에서 있을 Bari Tango Festival을 경로에 추가했다. 페스티발에 오는 댄서들의 라인업이 화려했다. 모조리 우리가 좋아하는 댄서들이였다. 바리는 이탈리아에서 크로아티아 넘어갈때 배 타는 도시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블로그를 찾아봐도 역시 '볼건 없어요'란 평을 듣는 도시였다. 그 도시 바리를 탱고 페스티발을 위해서 경로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나와 "누군지는 알아" 정도의 친분만 있던 L과 S는 밀라노 탱고 행사를 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이라는 땅덩이가 한국에서는 좀 먼 게 아니지 않은가. 이왕 가는 거 한 군데만 가기가 아쉬워서 시간이 맞는 다른 행사를 찾다 보니 바리 탱고 페스티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유럽의 탱고 여행이 처음이라는 이들은 여자 둘이만 가서 잘 놀고 올 수 있을까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일정이 겹치는 우리를 알게 됐다고.. 도착 전에 몇 번의 메시지가 오고 갔다. 이미 몇 달의 유럽 여행을 하고 있던 우리는 한국 사람이 반가웠고 몇 번의 메시지로 나는 이미 L과 S가 매우 친해졌다고 생각했나 보다. 머리를 산발을 하고 물을 뚝뚝 흘리며 후다닥 들이닥친 방에서, L과 S는 나의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너 이런 이미지였어?!ㅋㅋㅋ"
나를 본 그들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직 그렇게 막 허물없는 사이는 아녔던가? 내가 꽤 깍쟁이 같은 이미지였다고 했다. L과 S는 장기여행을 하고 있을 우리가 한식이 그리울 것 같았다면서 자신들의 캐리어를 풀어 보여주었다. 가방 속 내용이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캐리어 가득 채운 한식 재료들이라니!!! 거의 1년을 계획하고 배낭여행을 떠난 우리에게 무게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배낭에 들어갈 물건 하나하나가 신중했다. 하나를 넣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햇반, 조리된 찌개 같은 무거운 먹거리를 가방에 담는다는 건 사치 중의 사치였다. 이런 사치를 우리를 위해, 그것도 바리까지 바리바리 싸오다니 이건 찐! 이야. 역시 인간은 먹을걸 나눠야 정이 깊어진다. 컵라면에 부을 뜨거운 물을 얻으러 간 호텔 바에서 바텐더는 "이거이 무에에 쓰는 물건이야?" 신기하게 우리를 바라봤다. 그런 시선 따위야 중요하지 않지. 네가 컵라면 맛을 알아?
우리 부부 외에 한참 혼자 유럽여행을 하고 있던 A양도 합류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페스티벌이 열리는 호텔에 방을 잡았는데 그녀만 혼자 에어비앤비 집을 얻었다. 호텔방에서는 쓸수 없는 부엌과 식당까지 있는 큰 독채를 얻은 그녀의 집에 우리는 모였다. 달걀후라이는 한 사람당 3개씩은 먹어야 된다면서 S는 한 쟁반 가득, 산처럼 계란 후라이를 만들었다. L은 찌개와 밥 그리고 각종 반찬으로 뚝딱 엄마 밥상을 차려낸다. 파스타와 피자에 쓰라린 속에 한참 한식이 고플 때였던 A양과 우리 부부는 그 저녁의 만찬을 즐겼다.
바리 탱고 페스티발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는 건 사람이니까. 우리는 한국에서 가까운 길을 두고, 멀고 먼 길을 돌아 이탈리아의 한 도시, 바리에서 탱고를 계기로 만났고 베프가 되었다.
그래서 탱고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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