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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ny 탱고이야기

까베세오, 끝날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 @크라코프 Krakow 탱고 마라톤, 폴란드

by NomadJJ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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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kow tango marathon, Poland

탱고를 처음 배울 때 탱고 밀롱가의 룰도 같이 배우게 된다. 탱고에서 춤을 신청할 때 까베세오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Cabeceo란 춤을 추고 싶은 상대에게 살짝 눈빛을 보내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춤 신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점이 춤 신청을 거절당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 부끄러울 일이 덜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가끔 오류가 생기는데 특히, 사람들이 촘촘히 앉아있을 때 저 남자의 또는 저 여자의 눈빛이 나를 향하는 줄 알았다가 내 옆사람일 경우 황당한 일을 겪을 수가 있다. 그래서 까베세오가 성공했다고 생각한 후에도 바로 일어서지 말고, 남자가 여자 앞에 와서 손을 내밀거나 직접적인 사인을 할 때까지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 물론 여자도 남자가 자기에게 오는 동안 당신이 맞다는 사인을 계속 보내면서 남자가 실수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크라코프(Krakow)는 폴란드의 옛 수도로 운 좋게 2차 세계대전에 파괴되지 않아 고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나치군은 사령부를 크라코프에 차리고 있어서 이 도시를 파괴하지 않았지만, 이 도시는 유대인 학살의 핵심 도시가 된다. (Kroakow 근처 아우슈비츠에서 대학살이 자행됐다.)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도시, 크라코프는 꼭 한번 와보고 싶은 도시였기 때문에 크라코프 탱고 마라톤 (Krakow tango marathon)이라는 행사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중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 맛있는 음식, 저렴한 물가까지 여행자에게는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도시이지만, 크라코프 탱고 마라톤은 실망스러웠다. 전체적인 연령층이 매우 높았는데 탱고 실력을 떠나서 플로어 룰을 잘 지키지 않는 할아버지들이 태반이라 론다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중급 이상의 실력이 돼서 춤을 춰보고 싶은 몇 안 되는 할아버지들은 눈 마주치기도 쉽지 않았고 까베세오는 너무나 힘들었다. DJ의 선곡은 지루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나에게만 그런 건지 같이 있던 폴란드 땅게라와 미국 땅게라는 불평은 하지만 쉬지 않고 춤을 추러 나가고 있고, 나 혼자만 망부석처럼 앉아 있자니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늘상 말하듯이 최악의 밀롱가는 모두 다 재미없는 밀롱가가 아니고 "나만" 재미없는 밀롱가 아니던가. (사실 나는 심각한 까베세오 장애를 가지고 있다. 4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런데 그때는 얼마나 더 심했을까.) 놀다 들어오는 남편과 얘기하다가 스낵바나 오가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땅게라들은 알겠지만 안 풀리는 날은 계속 안 풀린다. 오늘은 그냥 접어야 하는 날인가 보다..

 

밀롱가 중간에 폴란드 댄서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몇 딴다가 지났을 때였을까. 플로어 주변에는 의자가 없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서서 까베세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공연을 한 T가 내 쪽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오 마이 갓? 나를 보는 거야? 정말 나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슬쩍슬쩍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T가 내쪽으로 걸어왔다. 정말 내가 지금 오늘 마에스트로랑 까베세오가 된 거야? 입가에서는 벌써 미소가 새어 나왔지만, 나서면 안 돼! 끝까지 기다려야 해.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T가 내 앞에 설 때까지 기다려야 해! T는 정말 내 앞에 와서 섰다. 그런데 나를 보고 있는 눈빛이 뭔가 좀 묘했다. 나를 보고는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뭐 성격이 그런가 보지. 아무튼 그는 나랑 까베세오가 됐고 내 앞까지 걸어와서 내 앞에 이렇게 서 있지 않은가. 이제 된 거야. 나는 그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그때 그가 처음으로 날린 말은

 

"Excuse me..."

 

??? 그때 내 뒤에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같은 말이 들렸다. Excuse me.. 

!!! 그렇다. T의 그녀는 자리가 비좁다 보니 하필 내 바로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 건 그 몇 초 안에 나는 이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이지.

"Sorry."

내 얼굴은 이미 홍당무가 됐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한 걸음 나아갔던 그 방향 그대로! 원래 가려했던 것처럼! 그렇게 화장실로 직행했다. 나 자연스러웠을까? ㅜㅜ

 

까베세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Krakow tango marathon


Krakow 크라쿠프,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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