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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ny 탱고이야기

또 하나의 이별 @el Tango 서울

by NomadJJ 2020.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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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Tango 신사 @Seoul, Korea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계의 탱고가 멈춰 선 지 4개월이 되어간다. 서울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신사동 엘 땅고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존의 장소는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되니 이제는 신사동 엘 땅고가 아닌 신논현 엘 땅고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첫 번째 것, 사람, 장소 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엘땅고가 나에게는 그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오늘은 추억팔이를 해봐야겠다


탱고를 시작한 지 2달 정도 됐을까? 오늘 탱고 수업의 주제는 밀롱가 실전 수업이다. 춤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춤을 추러 나간 플로어에서는 어떤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지 등등, 우리는 둥글게 앉아서 어색하게 까베세오라는 것을 배웠다. 수업이 끝난 후에 선생님과 학생들은 처음으로 밀롱가라는 곳을 구경 가게 된다. 말 그대로 '구경'이다. 아직 우리는 밀롱가에서 춤을 추기에는 걸음마밖에 못하는 수준이라 우리에겐 걸음마지만 다른 말로는 민폐가 되는 것이다. 신사역 사거리를 건너니 멀지 않은 곳에 탱고 바가 있었다. 이름도 el Tango! 이런 땅고스러운 이름이라니. (탱고는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땅고라고 한다.) 이곳이 한반도에 잠시나마 탱고 열풍을 불게 한 드라마, 여인의 향기 촬영지이기도 하지?

 

경사진 도로에 빼꼼히 열린 유리문은 본 건물과는 이상하게 조금 외떨어진 곳에 있어서 마치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던전의 입구 같은 느낌이다. 유리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니 카운터를 겸하고 있는 작은 바와 휴게공간이 있었고 플로어 쪽으로는 검은색 암막 커튼이 쳐져 있었다. (리모델링 전 엘 땅고는 이런 모양이었다. 이러고 보니 나도 탱고 고조선 사람이다.)

 

이 커튼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암막커튼이 낡은 극장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약간 퇴폐적인 느낌도 났다. 커튼을 열고 안쪽에 테이블을 하나 잡아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뻘쭘 뻘쭘... 처음 가본 밀롱가가 엘 땅고의 무슨 요일, 어떤 밀롱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구경 모드인 우리들에게는 충분히 신기했다. 입장료에 포함된 음료수를 홀짝거리며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오늘 생일이신 분이 있다고 생일 이벤트를 시작했다. 오늘은 N이라는 분의 생일이었다. 탱고판의 생일 이벤트란, 생일인 사람이 플로어에 혼자 나가고 음악이 시작되면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사람들이 한 명씩 나가서 생일자와 함께 춤을 춘다. 한곡 동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한 사람과 1-2마디씩만 추기도 하고, 나오는 사람이 적으면 1절 이상 출 수도 있다. 처음 알게 된 탱고 생일 이벤트는 너무 아름다웠다. Hug라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아브라소로 인사를 하고, 춤을 추면서 하는 생일 축하라니.. 탱고 문화가 어색하지만 이국적이고 멋졌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불쑥 나의 클래스 메이트 S양이 플로어로 나갔다. 우리는 모두 너무 초보들이라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나와 똑같이 아직 걸음마 수준인 S양. 역시 똘끼 충만 S양. 나도 가끔 저런 똘끼가 부럽다. 하지만 후에 S양은 이날의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에이... 옆에서 M이 자꾸 나가라고 해서, 나가야 되는 거라고 해서 나갔잖아!" 이제는 탱고 친구가 된 N군도 이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나 그때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N은 수준급 댄서였고 걸음마도 잘 못하는 생면부지의 여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옷을 입고 툭 튀어나왔으니 거절을 할 수도 없고 당황스러웠다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낯선 이에게까지 축하받은 탱고의 문화는 당연히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우리 모두 이날의 추억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사람들이 대부분 떠날 시간이 돼서, 플로어에는 한 노신사와 예쁜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자분, 이 한 커플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분도 그렇지만 노신사분의 춤은 정말 근사했다. S양과 나는 그 춤을 한참 취해서 보고 있었다. "저분들 너무 멋지지 않아? 나이를 먹고도 저렇게 우아한 취미가 있으면 정말 좋겠어."   

 

그 후에 밀롱가를 자유롭게 다니게 되면서 엘땅고를 자주 가기도 하고, 또 뜸하게 가기도 하고 그런 기간들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신사역에 가면 언제나 엘땅고가 있다는 건 위안이 됐다. 언제라도 퇴근 후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신사역에 가면 엘땅고가 있어.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 없으면 탱고 음악을 듣지.

 

어릴 때 나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매번 이삿짐이 다 빠지고 난 휑한 집을 보면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보다 떠나는 곳에 대한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엘땅고의 이사는 나에게 어린시절 정든집을 떠나는 아쉬웠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했다. 익숙한 공간에 대한 이별은 또 하나의 이별이다. 이제 문을 닫는 신사동 엘 땅고에 가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해야겠다. 이제는 추억앨범의 한 페이지가 될 그곳으로..

 

리모델링 전 엘땅고 el Tango
리모델링 전 el Tango 엘땅고
엘땅고 el Tango

 

  • 엘 땅고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을 하는 것임. 신논현 시즌2!
  • 그때 그 노신사 분은 이제는 아부지아부지 놀릴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근데 요즘 아부지 탱고 좀 안 추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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