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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ny 탱고이야기

형식은 잊어 탱고 그냥 즐기는거야 @el Batakazo 밀롱가, 부에노스아이레스

by NomadJJ 202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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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onga el Batakazo -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한국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고 다시 북반구에서 남반구만큼 내려온 이 먼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와서 아프다니!

이번 여행에선 예전과 다르게 병치레를 자주 한다. 하루하루가 금쪽같은데 며칠 째 저녁시간 꼼짝없이 집에서 쉬다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같이 집에 있어주는 남편에게도 매우 미안하다. "오늘은 컨디션이 나아진거 같아. 오늘 밤에는 밀롱가 갈래." 오랜만에 밤 밀롱가 외출이라 남편도 나도 신이 난다. 오늘은 어딜 갈까? 바로 스마트폰을 열어 Hoymilonga를 뒤적인다. (Hoymilonga : 그날의 밀롱가 종류, 장소, 시간과 탱고 행사를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탱고의 종주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밀롱가가 열린다. 그중에 나랑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것도 일이다. 반면 이런저런 스타일의 밀롱가를 다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오늘은 지난번 남편이 혼자 다녀온 el Batakazo Cultural이라는 밀롱가 pick! 오늘은 너로 정했다.

 

우버를 타고 가는 내내 남편은 "이 밀롱가는 형식이란 게 없는데 진짜 재미있어. 너한테 정말 새로울 텐데... 너한테 별로일 수도 있어." 지난번에 너무 재미있었다면서 나에게 자랑인지 경고인지를 늘어놓는다. 행여 재미없다고 징징거릴 나를 대비해서 밑밥을 까는 것이다. 사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자유로운 밀롱가가 많다. 이 곳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된 탱고는 이곳에서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차 자유로워진 반면, 세상으로 뻗어나간 탱고는 타국에서 오히려 형식이라는 두꺼운 옷을 입었나 보다. 탱고는 이래야 해 저래야 해. 알고 보면 이것도 다 즐기자고 추는 소셜댄스인데 가끔 나는 탱고의 무게감이 버거웠다. 

 

Medrano 거리에 들어선 택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례 볼 수 있는 옛스러움을 뽐내는 매우 낡은 건물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입구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담배 또는 다른 어떤 것을 피우고 있다. 밀롱가에 들어서는 우리를 힐끗 보고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어두컴컴한 짧은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밝은 표정의 두 아가씨가 앉아있다. 입장료는 없고 도네이션만 받고 있어요.

 

"Welcome to el Batakazo Cultural!"

 

두 아가씨는 어색함 없이 카메라에 손을 흔들어 준다. 두 사람은 밀롱가 분위기와 너무나 닮았다.

내부는 어두웠고 군데군데 켜진 어두운 붉은 조명들이 희미하게나마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 발 디딜 곳도 없어 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지. 사람들 사이사이 공간까지 탱고 음악으로 가득 메워져 있는 느낌이다. 이곳은 진정 꽉 차 있어!!!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어디에 앉을 수나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한번 와봤다고 남편은 제법 능숙하게 구석의 의자를 잡아서 함께 슈즈를 갈아신었다.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고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입고 온 그대로 빨리 슈즈만 갈아 신고 무대로 뛰어든다. 사교력에 있어서 최강 능력을 자랑하는 남편은 이미 아는 친구들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금은 어리버리하게 있는 나를 위해 내 옆에 붙어있지만, 곧 친구랑 춤추고, 이야기하러 갈 것이기 때문에 나 또한 빠른 시간 안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 곳에 적응을 해야 한다.

 

희미한 내부 조명에 눈이 익숙해지고 나니 나름 이곳의 구조가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익숙해진다. 'ㄱ'자로 꺾인 작은 플로어는 (플로어라고 하기도 뭐한 그냥 방이다) 사람들이 춤을 추는 곳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까베세오가 이뤄지고, 도네이션을 받았던 입구 쪽에는 나름 동네 인싸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 또는 다른 것들을 피우면서 삼삼오오 소그룹을 만들고 있었다. 다행히 지난번 밀롱가에서 알게된 친구 R의 얼굴이 보인다. 사실 그 때 이 친구 춤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오늘은 찬밥 더운밥 가릴때가 아니지 않은가. 일단 아는체 하고 근황토크도 하고 첫 딴따를 췄다. !!! 그런데 뭐지? 너무 재미있잖아?! 공간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처음 R과 만났던 클래식한 밀롱가에서는 나도 R도 어느정도 경직됬었나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밀롱가에 오자 우리가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일까? 춤은 한층 즐거웠다. 한 딴따가 끝나고 나면 연이어 춤을 출 커플들은 그냥 플로어에서 다음 음악을 기다리고, 춤을 끝낸 사람들은 입구쪽 쪽방으로 우~ 몰려 들어갔다. 출근길 만원 버스에 서 있듯이 우리는 그 방에 촘촘히 서서 까베세오를 했다. 말이 까베세오지 실상은 옆사람에게 안녕? 춤출래? 그래! 이 정도의 까베세오가 오간다. 플로어는 가득 차고 론다 따위는 없으니 무게 잡고 폼 재면서 춤을 출 필요도 없다. 나도 점점 이 '자유'라고 불릴 수 있는 밀롱가 분위기에 맞춰지고 느긋해졌다. 긴장이 풀어지자 사람들과 대화는 재미있어졌다. 어떤 사람과는 살사 느낌이 나는 탱고를 췄고, 또 다른 사람과는 바차타 느낌이 나는 탱고를 췄다. (물론 나는 살사, 바차타 다 춰본 적 은 없다) 탱고가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잖아. 우리가 이곳에서 지금 나오는 이 음악을 같이 듣고 즐길 수 있으면 된 거지. 그렇지 않아?

 

탱고의 시작은 일에 지친 노동자들이 하루의 일과에서 온 피로를 풀고 위로하는 춤에서 비롯됐다고 들었다. 그랬던 춤이 비즈니스가 생기고 대회라는 것이 생기면서, 어쩌면 우리 스스로 탱고를 형식이라는 갑옷에 가둬 버린것 아닐까? 탱고가 '춤'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닐까?  

 

milonga 'el Batacazo', Buenosaires, Argentina 
milonga 'el Batacazo', Buenosaires, Argentina

https://tangodive.tistory.com/8

 

또 하나의 이별 @el Tango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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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angodive.tistory.co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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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kow tango marathon, Poland 탱고를 처음 배울 때 탱고 밀롱가의 룰도 같이 배우게 된다. 탱고에서 춤을 신청할 때 까베세오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Cabeceo란 춤을 추고 싶은 상대에게 살짝 눈빛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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