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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ny 탱고이야기

탱고안에서 꿈 많은 소년, D의 이야기 @투가탱고마라톤, 리스본, 포루투갈

by NomadJJ 2020.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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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 춰야 하나...

예상보다 첫인상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Lisbon tuga tango marathon (리스본 투가 탱고 마라톤)의 첫날, 유난히 눈에 띄는 남자가 있었다. 얼굴도 잘 생겼지만 무엇보다 춤이 매우 스타일리시해 보였다. 첫날 밀롱가는 대부분 초급 어르신들이 많아서 이 남자 유달리 더 돋보였다. 일단 저 남자 찜! 그런데 콧대 높을 거 같아. 쉽지 않겠는데?... 이리저리 기회를 엿보다 두 번째 밀롱가에서 드디어 까베세오에 성공했다. 예상대로 그 남자와의 한 딴다는 매우 즐거웠고, 콧대가 높을것라고 생각했던 이 남자는 굉장히 유쾌하다. 그 후에는 볼 때마다 장난을 치고 이야기를 건다.  

 

"나 애 봐야 되서 보통 밀롱가에 잘 못 와. 그래서 페스티벌 같은 거 맘먹고 오면 정말 열심히 놀아야 돼."

"뭐? 너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애 아빠였어?"

"정말? 기분 너무 좋은데? 하하하"

 

남자고 여자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 보인다는 얘기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그리고 D는 실제로도 매우 어려 보였다. 

 

D는 아테네에서 왔다. 어쩐지 춤을 매우 잘 추더라니... 아테네에 살다가 리스본에 처음 온 순간 이곳이 내가 살 곳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예쁜 아내와 귀여운 아들과 함께 리스본 근교에서 지내고 있다. 익살스러운 눈빛과 말투와는 달리 얘기를 하면 할수록 D는 탱고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했다. 처음 본 나에게 탱고에 대한 자기의 생각과 사람들에게서 느끼게 되는 감정 그리고 자기의 사업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매우 빠른 영어로) 영어가 약한 나는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고.. 안되겠어. 통역이 필요해. 춤추느라 바쁜 남편을 찾아서 우리 다음에 차 한잔 하면서 더 깊은 얘기 해보자 약속을 잡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밀롱가에서 D와 몇 번의 딴다를 더 추게 됐는데 D는 탱고를 출 때 매우 진지했다. 진지하다는 것이 단순히 미간에 주름을 잡고 묵직하게 무게를 잡았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곳을 그 곡의 분위기에 맞춰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이다. 밝고 경쾌한 곡에서 D는 최선을 다해 신났고, 가슴을 울리는 애잔한 선율에서는 최선을 다해 애잔했다. 

 

Tuga tango marathon, Lisbon, Portugal

 

그렇게 탱고 마라톤이 끝나고 우리는 아침부터 햇빛이 쏟아지던 날 다시 만났다. D의 집이 있는 리스본 외곽 Sao Pedro do Estoril 였다. 그곳에서 D는 자기가 매일 명상을 한러 나온다는 바닷가에 우리를 데려갔다. 파도가 코 앞까지 크게 물보라를 치면서 밀려왔다. 이곳에 혼자 앉아서 많은 생각을 한다고 했다. 런데 D... 여기서 명상할 때 눈은 감지 마. 파도가 세서 쓸려 가겠어 ㅋㅋ. 하던 일까지 그만두고 탱고 관련 사업을 전업으로 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D는 굉장히 바쁜 마케팅 전문가였다고 한다. D의 회사는 유럽에서 가장 큰 마케팅 회사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꽤 잘 나가는 사람이였다. 당연히 그가 맡은 프로젝트는 많아졌고 일 욕심이 많던 그에게 스트레스도 그만큼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D는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 쓰러졌다. 젊은 그에게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그가 매일 일에 매진하고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사이에 그의 심장은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곁에 더 오래 있고 싶었기에 그 후 일을 그만두고 그의 삶을 180도로 바꾸었다. 식습관을 채식 위주로 바꾸고 한가한 근교로 이사를 와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했다. 내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할까 그리고 내가 그중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D는 탱고를 춘다 그것도 상당히 수준급 댄서였다. 그는 탱고를 추면 행복했고 탱고를 출 때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심장소리가 안정되면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것을 알게됬다. 이거야! 그는 이런 모멘트를 남들도 느끼고 있을까? 춤을 추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당신은 왜 탱고를 추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탱고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D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졌다.

 

그리고 지금 D는 탱고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탱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숙박, 흔하게 만날 수 없는 탱고 마에스트로들의 탱고 노하우, 그리고 기존의 자신의 전문 분야인 탱고 행사 마케팅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플랫폼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사람들이 탱고를 더 쉽게 접하고 더 빨리 배워서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의 플랫폼은 물론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그는 계속 꿈꾸며 살을 붙여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D의 심장에 스트레스보다는 치유효과를 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D의 눈은 빛났다. 마치 우리가 꿈 많은 어린 시절 만화가게 주인이나, 대통령, 과학자를 꿈꾸며 얘기했던 그 시절의 신나던 눈망울이 생각났다. 그리고 진지했다. 나는 이토록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꿈을 얘기해본 때가 언제였을까?  물론 당신은 D가 마케팅 전문가였으니까 이것도 마케팅의 일환일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D의 집 뒷마당에서 D의 아내가 만들어준 샐러드와 건강빵을 먹으면서 D는 티를 마시고 우리는 커피를 홀짝였다. D의 반짝이는 눈망울은 그의 꿈을 듣고 있던 우리의 눈동자도 탱고 안에서 또 다른 꿈을 꾸게 해 주었다. 

 

D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Sao Pedro Estril, Portugal


Lisbon, Portugal

https://tangodive.tistory.co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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